색을 입히며 나를 돌아보다. 조용히 피어난 한 송이 마음의 연꽃.
먹선 위에 떠오른 고요한 풍경
민화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내가 할 수 있을까?’였다.
선을 긋는 것도, 붓을 드는 것도 낯설고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연꽃 도안을 받고, 먹선으로 그 형태를 완성했을 때 나는 조금은 달라진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 시간.
드디어 그 선들 위에 색을 입히는 날이 찾아왔다.
채색은 내가 그린 선들을 하나하나 어루만지는 작업 같았다.
그냥 색을 칠하는 것이 아니라,
선의 의미를 되새기며 색으로 숨을 불어넣는 과정.
조용한 마음으로 분채를 풀고, 붓에 물을 적셔 연잎 위를 천천히 지나갈 때마다 내 마음도 함께 물들어갔다.
붓끝에 얹힌 하루의 감정들
내가 선택한 색은 푸른 청록빛이었다.
잎은 생동감이 있지만 차분하고, 연꽃 봉오리는 아직 피지 않은 채 고요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마도 지금의 내 마음이 그랬던 것 같다.
너무 요란하지 않고, 너무 화려하지 않게.
그저 나답게, 조용하게 피어나고 싶은 마음.
색을 겹겹이 쌓는 과정은 마치 하루하루를 정성껏 살아가는 일과도 닮아 있었다.
한 번의 붓질로 끝내지 않고, 같은 자리라도 세 번, 네 번 덧칠하며 빛을 더했다.
그 속에서 깨달았다.
가장 깊은 색은 천천히 완성된다는 걸.
피지 않은 꽃이 전해주는 말
채색을 마치고 그림을 들여다보았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건 아직 색이 들어가지 않은 연꽃 봉오리였다.
마치 지금의 나를 그대로 담은 듯했다.
아직 다 피지 않았지만, 분명히 그 자리에 있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천천히 나답게 피어날 준비를 하는.
민화는 내 마음의 풍경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그저 전통 그림을 배우고 있는 줄만 알았는데, 그 속에 나 자신이 있었다.
붓끝에서 흔들리던 감정, 색에 담긴 하루의 기억, 그리고 말없이 응원해주는 연잎들의 부드러운 품.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나를 치유하고 있었다.
다시 붓을 드는 이유
민화를 배우며 알게 되었다.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 시작한 것이 아니라, 그림을 통해 나를 잘 살피기 위해 이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을.
붓을 들고 색을 칠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잠시나마 세상의 소음에서 멀어질 수 있었다.
누군가는 산책을 하며 힐링을 얻고, 누군가는 음악을 듣지만,
나는 민화 속에서 고요한 나를 만난다.
그리고 오늘, 그 연꽃처럼
나도 조금씩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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